요즘 드라마 정도전을 신명나게 보고있당^^ 물론 군데군데 맘에 안드는 부분이 없는건 아니지만-그래서 한동안 안보다가 이번 연휴에 13시간 연속시청^오^으로 따라잡느라 엉덩이에 뾰루지라도 나는줄 알았지만- 요즘 하는 드라마중에는 제일 맘에 든다.
여러 측면에서 맘에드는 드라마지만 역시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가 젤로 좋다. 그중에서도 조재현...에헤헤헤헤^ㅠ^ 조재현은 예전부터 좋아하던 배우였고 정도전 역할을 맡는다고 했을때는 '으악 내가 이렇게 고대하던 사극에!!!' '으악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배우가!!!!'나와서 불안한 마음까지 가지고 첫회를 시청했었다. 다행히도 잘 연기해주고 계시다 헤헤
그런데 뿌듯한 마음으로 정도전을 감상할때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찌뿌둥한 의문이 있었으니, 바로 '내가 언제부터 조재현을 좋아했더라...?' 였다. 나쁜남자???는 설마 아닐테고(나는 김기덕을 좋아하지 않으니) 다모인가...? 근데 다모에서는 조재현 진짜 짱 쪼금 나오지 않았었나...? 의문이 계속 찌뿌둥하게 남긴 하는데 정말이지 나쁜남자랑 다모 말고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난 약간은 미심쩍은 마음으로 그냥 다모의 채옥이아빠에서부터 좋아했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오늘 엄마가 트라이앵글을 열심히 보시는걸 옆에서 구경하다가 거기 나오는 오연수를 보고 갑자기 기억이 났다. 눈사람!!!! 그래 바로 그 드라마가 있었다. 남들이 다 올인 볼때 혼자 열심히 눈사람에 대한 충절을 지켰으나 충공깽의 결말에 멘붕이 와서 기억에서 지워버린 드라마.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여중생의 마음에 스크레치를 남겼던 드라마. 그래도 ost만큼은 좋아서 아직까지도 가끔씩 그 주제곡이 라디오에서 나오는 바로 그 드라마였다. 오늘은 그 드라마에 얽힌 개인적인 기억에 대해서 써보기로 한다.
눈사람(2003). 공효진 조재현 김래원 오연수 주연 (오 김래원도 나왔었나?). 김도우 극본(김삼수니 작가). 형부와 처제의 사랑이라는 센세이션한 소재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그 둘이 맺어지는 결말로 더 큰 논란을 가져온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뭔가 되게 텁텁하고 우울하게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 사실 초반부는 아주 상큼하게 시작했었다. 그 상큼한 초반부에 낚인게 나였다. 김도우라면 김은숙과는 좀 다른 스타일로 대사빨 죽이게 쓰는 작가님이시고, 바로 그 대사빨을 눈사람 초반부에서 유쾌하게 보여 주셨다. 천방지축 여고생과 패기 한컵+허세 한티스푼 정도 첨가한 열혈 형사님이 티격태격하는거 보는게 되게 재밌었다. 둘은 이런저런 일들로 엮이면서 앙숙이 되는데, 아이고 이런, 이 짜증나는 형사 아저씨는 공효진이 세상에서 젤로 좋아하는 언니와 결혼할 사람이고, 이 밉상 여고생은 조재현이 너무너무 사랑하는 여자의 동생으로 밝혀진다. 졸지에 결혼을 허락받아야 하는 을의 위치로 전락한 조재현은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공효진에게 꼼짝 못하고, 공효진은 그걸 이용해서 맘껏 아저씨를 괴롭히고ㅋㅋㅋ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날 형사 조재현의 멋진모습을 보고 드디어 마음이 움직여 언니와의 결혼을 허락하게 된다는, 여기까지는 뻔하고 훈훈한 전개 ^^ 나 역시도 즐겁고 신나게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멘붕적 전개는 예상도 못한채...
공효진이 조재현을 형부 이상으로 조금씩 좋아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처음엔 자기 감정에 자신없어하고 불안해 하지만 점차 자신이 형부를 형부 이상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막 술마시고 기습 뽀뽀도 하고 그러다가 조재현이랑 어색한사이 되고 조재현은 괜히 모른척하려고 노력하고 공효진은 계속 갈팡질팡 하면서 형부에 대한 마음을 자꾸만 키운다. 보통 여기서부터 사람들은 '어 쫌 이상한드라마당....올인 봐야겠당^^' 이랬던거 같다. 근데 나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이 드라마를 진지하게 좋아하기 시작했으니....괜히 공효진한테 감정이입 하고 도발하는 공효진에 대한 형부의 반응에 설레하고 그랬다. 아마 내가 그때 수학선생님을 좀 좋아하고 있었는데 그걸 이 드라마에다가 투영했던거 같다. 하...여중생의 감수성이란 정말 소르미...^_ㅠ
공효진의 천사같이 착하고 어여쁜 언니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으면서, 금지된 사랑이야기를 좀 애절하게 푸는 줄 알았던 드라마가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이 파국은 평범한 드라마 클라이막스에 등장하는 속도감있는 파국들과는 달리, 엄청 길고 지리하고 우울하고, 암튼 보는 사람까지 다운될 정도로 치덕치덕 했다. 근데 신기한게 뭐냐면 막 인물들에게 답답하거나 짜증나지가 않았다. 내가 드라마에서 젤 싫어하는 게 인물들이 이해할수 없는 행동을 하고, 다들 갑자기 벙어리가 되셨는지 결정적인 순간에 할말을 못하고 질질질 끌고(특히 일일드라마들!!!), 그래서 오해와 오해가 쌓이면서 갈등이 고조되는 그런 유형의 전개인데 눈사람은 지리하고 우울한데도 불구하고 그런면이 거의 없었다. 여기서의 주인공들은 이기적인 측면은 있을지언정 다들 상당히 합리적이고 지 하고싶은말은 맘껏 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니까 드라마 속 갈등이 인물들의 언어장애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오로지 그들이 처한 상황과 각자의 성향이 충돌하면서 고조되었다는 것인데 여기서 새삼 작가의 글빨에 놀랄 수밖에 없다. 김도우 작가가 차기작인 김삼순으로 대히트를 치고 난 후, 그에대한 한 평론에서 "할말을 다 하는, 답답하지 않은 여주인공의 탄생"에 대한 찬사를 읽은적이 있다. 예전의 드라마들이 일종의 의사소통 장애를 통해 억지로 갈등을 고조시켰다면-가령 결정적인 순간에도 비밀을 털어놓지 못하고 바보처럼 당하기만하는 답답한 여주인공-, 김삼순은 그런거 없이, 하고싶은 말을 시원하게 해버리는 혁명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캐릭터들이 그때그때 할말을 다 해버리면 드라마의 재미에 필수적인 갈등을 지속시킬 수 없다는 그간의 우려(라고 쓰고 작가들의 능력부족과 게으름이라고 읽는다)를 김도우는 "김삼순"으로 말끔히 날려버렸다. 김삼순 이후로 적어도 10시타임 미니시리즈에서만큼은 언어장애에 걸린 여주인공의 비율이 눈에띄게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나는 로코 드라마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이 김삼순이라는 아이콘의 탄생이, 정반대 분위기의 우중충한 첫 작품인 눈사람에서 예고되었다고 생각한다.
(하 근데 나 왜 엄청진지하게 드라마비평 쓰고있지 갑자기...? ^_ㅠ 이 글은 눈사람 드라마에 얽힌 지극히 개인적인 역사를 되돌아보려고 쓴건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눈사람!! 그래 눈사람에서 언니가 죽으면서 드라마의 우울도는 점점 짙어지고...나중엔 조재현네 가족, 김래원네 가족까지 다 나와서는 막 얽히고 섥혀서 난리도 아니다. 그리고 결말에서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연예뉴스를 통해 봤겠지만 정말 충격적이게도 조재현♡공효진 이 맺어진다. 공효진이 언니 죽었을 때 엉엉울면서 다신 형부를 마음에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던게 엊그제같은데...? 뭐라고여? 둘이 애기까지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고여...????? 이보시오 작가선생 지금 제정신이쇼?????라고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외쳤다. 진짜 현실욕설을 육성으로 질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눈사람 공홈에 가서 분노의 비난글을 썼지. 그 밑에는 이런저런 댓글이 달렸었는데 그중에 이런게 있었다. "아직 어리신거 같은데 언젠가 저들을 이해할 날이 올거에요"
일반적으로 키배 상황에서 어린 애한테 어리다고 말하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엄청 화를 낸다. 전형적인 중2병 증상^^ (당시 실제 중2ㅋㅋㅋ오 소름) 나 역시 그러했다. 어려서 이해 못하는 거라는 그 댓글을 보고 머리끝까지 화가났다. 왜냐하면! 나는! 그 커플의 사랑을 이해하는 어른스러운 중 2 시청자였기 때문이다. 그때 이 커플을 향한 내 태도는 약간 복잡했는데 일단 나는 그 처제-형부 커플을 지지했다. 공효진에게 감정이입해서 형부인 조재현 캐릭터를 진짜진짜 좋아했었다. 그리고 내가 그 커플을 좋아하는 만큼, 그 커플이 세상에서 비난받을 짓을 하는게 정말 싫었다. 아름답게 서로를 마음으로만 그리워하는 결말이 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근데 눈사람 결말은 나의 그런 바람을 송두리째 깨버렸다.(애까지 낳으니...ㅠㅠ) 정말 좋아하던 커플이 더럽혀진거 같아서 화가났다.
그 시절의 나는 내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는 데 자신만만한 사람이었다. 감정을 통제하는 데 별다른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인물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결말을 맘껏 비난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건 알겠는데, 왜 꼭 같이 살아야된단 말인가? 그냥 마음속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겨두면 안되나? 쟤네는 언니한테 미안하지도 않나? 또래에 비해 조숙하다고 자부했던 나는 어린애 취급을 하는 댓글에 기분이 잔뜩 상했고, "사랑하는거 까지는 이해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확실히 비도덕적이므로 수용 불가. 날 어린애 취급한 그 댓글러는 도덕과 윤리가 뭔지 모르는듯^^ㅗ" 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는 공홈에서의 키배를 마지막으로 전편 본방사수했던 이 드라마를 기억 저편에 처박아 버렸다.
그때부터 벌써 10여년이 지났다. 그리고 생뚱맞게 정도전과 트라이앵글이 눈사람을 상기시켜준 지금, 나는 그 결말을 반쯤은 이해한다. 세상의 비난을 받더라도 서로의 마음이 행복한 방향을 선택한다라....그럴 수밖에 없는 경우도 세상을 살다 보면 있는것 같다. 어떤 감정은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거나 그때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차라리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편이 낫게 여겨지는가 보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정도의 감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드라마가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이 그런 감정이고 사랑이었다면, 마음속에만 서로를 예쁘게 담아두는 결말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나는 내 맘을 편하게 해줄 그럴싸한 포장 정도나 요구한 걸까. 형부와 처제라는 관계에서 나오는 극적인 감정놀음은 보고싶고, 그 감정에서 비롯되는 선택의 불편함은 보고싶지 않았던 이기적인 시청자. 아니다, 이기적이라기보다는 그냥 좀 어렸던 걸로 해두자. 그때 나를 빡치게 했던 댓글쓴 이가 반쯤은 맞는 얘기를 해준 셈이다.



덧글
2014/06/11 12:01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2014/06/11 21:39 #
비공개 답글입니다.눈사람 얘기 잘 보고 갑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