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선호이론 ('부의 흑역사' 읽다가)
강준만, 『인물과 사상』 2019.6 (vol.254)
경제학에 현시 선호 이란 게 있다.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하는 폴 새뮤얼슨이 1947년에 출간한 『경제 분석의 기초』에서 제시한 이론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오른 『경제학 사전』은 이 이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소비자의 시장 행동에서 출발하여 수요함수가 소비자에게 합리적이기 위해서는 재화에 대해 어떤 현시된 선호 순서를 가질 것인가를 고찰하는 것이다. 소비자의 선호에서 무차별 곡선은 원래 소비자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므로 외부로부터 투시할 수 없다. 따라서 소비자의 선호는 주어진 가격 조건에서 결정되는 수요량으로 현시될 뿐이다."
이걸 읽는 순간 슬그머니 쓴웃음이 나왔다. "보통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해주면 안 되는 걸까?"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처음에 누가 '현시 선호 이론'이라고 번역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현시'라는 어려운 말을 써야만 했는지도 의문이다. '현시'란 '나타내 보임'이란 뜻인데, 차라리 '행동 선호 이론'이라고 번역하는 게 뜻을 전달하는 데엔 더 나은 게 아닐까?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끔 설명하자면, 나는 우선 "입보다는 몸을 믿으라" 또는 "말 보다는 행동에 주목하라"는 이론이라는 말을 들려주련다.
영국의 의사 겸 도덕 사상가인 버나드 맨더빌은 1714년에 출간한 풍자시 「꿀벌의 우화」를 통해 당시 영국 사회 모든 계층의 기만과 인간 본성에 대한 기성도덕의 위선적 견해를 비판하고 나섰다.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금욕과 절제에 바탕을 둔 중세 기독교 철학이 지배적이던 시대에 돈 욕심과 개인의 악덕이 사회를 이끌어간다고 주장하는 파격을 보여 오늘날까지도 자주 거론되는 작춤이다. 아주 흥미로운 인물이니, 국내 번역본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본문보다는 번역자인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최윤재의 73쪽에 이르는 '해제'가 더 재미있다.
맨더빌은 이 책에서 현시 선호 이론의 원조라고 할 만한 주장을 폈는데, 이런 내용이다. "나는 인간이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을 즐거움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보다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즐거움이라 부른다. 전혀 상반되는 즐거움에 탐닉하고 일상적으로 추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그 사람의 가장 큰 즐거움이 마음을 갈고닦는 것이라 믿을 수 있겠는가?"
이 대목은 미국 저널리스트 대니얼 액스트의 『자기절제사회: 유혹과잉시대, 어떻게 욕망에 대항할 것인가』에서 재인용한 것인데, 역시 저널리스트답게 액스트의 설명은 더욱 이해하기 쉽니다. "여러분은 프루스트를 읽거나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주장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것이 자신이 진심으로 선호하는 활동이라고 믿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러분이 여가 시간을 전부 텔레비전에서 진흙탕 레슬링이나 홈쇼핑 채널을 보는 데 사용한다면, 새뮤얼슨이 생각하는 여러분의 선호 활동이 무엇일지는 분명하다."
심리학자들의 설명도 경제학자들의 설명보다는 친절하다. 미시간 대학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은 이런 설명을 제시한다. "어떤 것의 가치는 사람들이 그것에 얼마를 기꺼이 지불하느냐로 드러난다. 얼마를 지불하겠다고 말하는 것과는 사뭇 다를 수 있다. 자신의 선택 의사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그것을 증명하기도 어렵고 자기모순적일 수도 있다. 무작위로 선택된 사람들에게 기름 유출로 고통 받는 새들을 구조하는 문제를 물었더니, 한 부류는 2,000여 마리를 구조할 돈을 쓰겠다고 했고, 다른 부류는 20여만 마리를 구조할 돈을 쓰겠다고 했다. 새를 아무리 많이 구조해도 예산은 차고 넘친다는 듯이!"
그렇다면 현시 선호 이론은 우리의 실생활에서 무엇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 "전통시장 살리자면서 왜 본인은 안 가십니까?" 경제 칼럼니스트 오철이 현시 선호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던진 질문이다. 그는 "말과 행동이 다른 것에 대한 고민, 시장에서 나타나는 소비자들의 현실적인 선택에 기초해서 소비자 이론을 설명하고자 하는 데서 이 '현시 선호 이론'은 시작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고유의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정부는 소득 공제를 포함해 상품권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주차장도 만들어주며, 대형 마트 휴무일까지 강제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정작 전통시장은 살아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안타까워하고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전통시장을 살리자고 했던 우리의 발걸음은 언제나 대형 마트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유의 전통시장을 살리자고 외치고, 정권마다 '진정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전통시장을 살리는 것이다'라는 판단을 하고 여러 노력을 해왔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많은 사람들의 이 안타까움이 진실하지 않다는 결론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전통시장을 살리자고 하지만, 실제 드러나는 선호를 보면 대형 마트를 선호한다고 나타난다."
이는 여론조사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위선적인 답을 하려는 경향이 있는 '사회적 선망 편향'과 비슷하다. 이와 관련, 로버트 세틀과 파멜라 알렉은 『소비의 심리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많은 마케터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소비자들의 선택의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그들의 시장에 있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직접 설문에 의해서 진짜 쓸 만한 구매 동기를 발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소비자의 구매 동기를 알아내는 것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간접적으로 알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성공적인 소매 기업 어번 아웃피터스는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시장조사는 낡은 방식으로 실효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대신 가게 내에서 고객이 보이는 태도와 행동을 비디오테이프나 스냅 사진으로 촬영해서 그것을 토대로 고객의 특성을 분석한다. 고객의 마음을 끄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을 얻기 위해서다(물론 고객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은 따져볼 문제다). 이 기업의 철칙은 이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고 사람들의 행동을 믿는다. 당신의 고객이 말하는 것을 무시하시오. 단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유심히 관찰하시오."
어번 아웃피터스의 그런 철칙은 유권자들이 명심해야 할 원칙이기도 하다. 선거 시 정치인들이 내세운 공약公約은 선거 후 공약空約이 되기 때문이다. 널리 인용되는 사례가 하나 있다. 1988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조지 부시의 대표적인 선거 슬로건인 "내 말을 믿으세요. 새로운 세금은 없습니다(Read My Lips, No New Taxes)"가 바로 그것이다.
"Read My Lips"는 직역을 하자면 "내 입술을 읽으세요"라는 뜻인데, 1958년 작곡가 조 그린이 첫 선을 뵌 이후로 <Read My Lips>라는 제목의 노래가 여러 곡 나왔을 정도로 미국에선 널리 쓰이는 유명한 표현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부시는 4,00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 적자 때문에 자신이 한 약속을 어김으로써 "부시의 입술은 거짓말하는 입술"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부시는 식언을 한 셈이 되었기에, "Read My Lips!"도 우스갯소리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철학적 관점에서 현시 선호 이론을 다룬다면, 위선에 대한 심층적 고찰로 이어질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트랑 베르줄리는 "우리는 속되지 않으면 위선적이다. 위선적인 것은 속된 것보다 더 비참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속된 것이 어른이 되는 유치한 방식이라면, 위선은 유치함으로부터 벗어나는 변태적 방식이다. 위선은 겉으로 대중 앞에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는 사적으로 속되면서 그렇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위선은 도덕을 과시함으로써 속된 방식으로 도덕적이려는 태도다. 몰리에르의 <타르튀프>가 그것을 잘 보여주는 예다. 타르튀프는 도덕적인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도덕에 대해 말하는 걸, 타인들을 훈계하는 걸, 도덕 시범을 보이는 걸, 도덕을 연출하는 걸 좋아한다. 한마디로 그는 도덕 연극을 좋아하는 것이지, 실제 도덕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 주장의 핵심을 이렇게 간결하게 표현했다. "도덕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을 향해 취하는 태도일 뿐이다." 프랑스 철학자 레지 드브레는 "우리는 도덕적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보다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에게 더 큰 찬사를 보내요지 않았던가!"라고 개탄하면서 "도덕은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고 단언한다.
현시 선호 이론에서 너무 멀리 나간 느낌이 들긴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고 사람들의 행동을 믿는다"는 어번 아웃파터스의 슬로건은 사실 정치에 적용되어야 할 금언이라는 점은 강조해 둘 필요가 있겠다. 중요한 건 행동과 실천이지만, 선거는 어음을 제시하는 마당이기에 말 이외에 판단할 게 별로 없다. 그저 늘 말로만 이루어진 어음이 나중에 행동과 실천에서 부도가 나는 걸 지켜보아야만 하는 처지가 유권자들의 숙명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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